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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닮은 그릇]

수일 전 오타루시의 저녁 풍경. 하늘은 파란색과 연한 핑크색이 섞인 그라데이션으로 뒤덮여,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침노을이 지면 비가 오고, 저녁노을이 지면 날이 갠다'는 말이 있듯이, 다음 날은 여름다운 맑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오타루 쇼룸에 전시된 유리 그릇이 떠올랐습니다. 유리 공예 공방 fresco가 만든 이 유리 그릇은 '가스미(봄 안개)'를 이미지로 제작된 작품으로, 은은하게 흔들리는 색감의 유리가 매장 조명에 비쳐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자연 현상에서 말하는 '가스미'는 공기 중의 물방울 등으로 인해 멀리 풍경이 흐릿하게 하얗게 보이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바로 그 환상적인 광경이 유리로 구현된 것입니다. '가스미색'이라고 들으면 어쩐지 옅은 색조가 떠오르는 것은, 일본인들이 오래전부터 자연의 변화를 섬세히 관찰하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일본에는 천 가지가 넘는 전통 색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벚꽃과 등나무, 나무와 잎의 색, 하늘 색의 변화 등 사계절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색 이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전에는 식물이나 나무 껍질 등 자연 유래 재료로 천을 염색했기 때문에 같은 색이라도 염색 방법이나 계절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생깁니다. 그 섬세한 차이를 구분한 것 역시, 일본만의 풍부한 색채 문화가 형성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에도 시대에는 막부가 사치 금지령을 내려 서민들의 사치를 제한하고 화려한 색의 옷을 입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입을 수 있는 색도 '갈색(茶色)', '쥐색(鼠色)', '남색(藍色)'의 세 계열로 제한되었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염색 기법을 통해 미묘한 색의 차이를 즐겼습니다. '사십팔차 백쥐(四十八茶百鼠)'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갈색과 쥐색만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색조가 만들어졌으며, 이를 통해 제한된 색채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려 했던 일본인 특유의 미의식과 색채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리 공예 공방 fresco의 'kasumi' 시리즈 그릇 역시 한 가지 색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색상의 겹침이 있습니다. 보는 각도와 빛에 따라 색감이 더해지고, 그 표정은 노을이 물든 하늘이나 옅은 안개가 드리운 풍경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감상하듯, 일상 속에서도 계절과 빛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그릇입니다. 오타루 쇼룸에서 직접 손에 들어 보시며, 그 섬세한 색감을 꼭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fresco의 kasumi bowl
https://www.shokunin.com/kr/fresco/kasumibowl.html
fresco의 kasumi plate
https://www.shokunin.com/kr/fresco/kasumiplate.html
오타루 쇼룸
https://www.shokunin.com/kr/showroom/otaru.html

참고자료
https://www.nhk.or.jp/bunken/summary/kotoba/gimon/025.html
https://ori-ori.jp/history-of-traditional-colors-and-recommended-books
https://ja.wikipedia.org/wiki/奢侈禁止令#cite_not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