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본도리의 현재와 과거를 걸으며]
교토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센본도리. 자동차와 버스가 오가고, 지역에 밀착한 상점들이 늘어선 차분한 생활 도로이지만, 실제로는 헤이안쿄가 탄생한 794년부터 12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그 역할과 거리의 모습을 시대마다 크게 바꿔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시대마다 센본도리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그 변천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센본니조 교차로. 도시의 흔한 풍경이 펼쳐진 이곳에는, 7~8층 규모의 빌딩에 해당하는 붉은 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이중문 '주작문(朱雀門)'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헤이안쿄의 메인 스트리트였던 시절의 센본도리는 '주작대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재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그 도로 폭은 무려 약 84m. 교토시 중심부의 오이케도리보다 훨씬 넓고, 도쿄의 오모테산도보다 약 2.3배에 달하는 광활한 직선 공간이었습니다.
주작대로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다고 전해지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물리적인 넓이 때문만이 아니라, 국가의 이상을 시각화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정교한 도시계획에 있습니다. 그 근본에는 북극성을 기준으로 한 천문학 사상과, 대자연의 힘을 활용하는 풍수(사신상응)와 같은 '우주의 질서'가 있었으며, 그것이 수도의 중심을 관통하는 완전한 좌우대칭의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결정화되었습니다. 남쪽 정문인 라성문을 지나 외국 사절과 지방 관료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약 3.8km에 걸친 가로막힘 없는 직선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앞쪽의 웅장한 주작문과 궁전군, 뒤쪽에 우뚝 솟은 후나오카야마와 기타야마의 산줄기가 하나의 축선 위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이 압도적인 대파노라마는 일본의 국력과 천황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말 그대로 '국가의 위신을 건 메인 스트리트'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헤이안 중기 이후, 수도의 서쪽이 쇠퇴하면서 거대한 대로는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도로 폭은 점점 좁아졌습니다. 한때 화려했던 '주작'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중세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센본도리'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에는, 이 길이 수도의 북서쪽에 있던 장례지 '렌다이노(蓮台野)'로 들어가는 입구였던 것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에는 망자를 추모하기 위한 소토바(卒塔婆)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여러 설이 전해지지만, 훗날 오노노 다카무라가 염라대왕의 모습을 새겨 세운 사당을 바탕으로 창건된 '센본엔마도(인조지)' 주변에 수많은 소토바가 늘어서 있었던 풍경이야말로 '센본도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세워져 응인 전쟁의 전화를 기적적으로 피한 국보 '센본샤카도(다이호온지)' 본당이 1227년에 건립될 때, 그 과정에서 대목장의 아내인 '오카메'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이 전설은 '장인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한 내조의 공', '부부 화합', '인연 맺기'의 상징으로 큰 신앙을 모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그 시기가 바로 에도 시대였습니다. 주변 지역이 '니시진오리'의 황금기를 맞이하자 센본도리는 장인과 상인들이 오가는 생활도로로 자리 잡았고, 곳곳에서 베틀 소리가 울려 퍼지는 서민들의 활기로 가득한 산업의 길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까지, 센본도리는 다시 한 번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며 교토를 대표하는 번화가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동쪽의 가와라마치, 서쪽의 센본'이라 불릴 만큼 이름을 떨쳤으며, 밤에도 낮처럼 밝았던 엔터테인먼트의 성지였습니다. 그 변화의 기폭제가 된 것은 1912년에 개통된 노면전차(시덴)였습니다. 좁아진 센본도리의 처마 끝을 스칠 듯 전차가 달렸고, 교토 시내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센본나카다치우리 일대를 중심으로 꽃피운 것이 바로 '영화 문화'였습니다. 연극 공연장이 영화관으로 탈바꿈한 '센본자'를 거점으로, 일본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키노 쇼조와 일본 최초의 영화 스타인 오노에 마츠노스케 등이 활약하며 일본 영화의 여명기를 이끌었습니다. 당시의 센본도리는 일을 마친 니시진의 직공들과 모던보이들로 연일 활기에 넘쳤다고 전해집니다. 그 화려했던 시절의 흔적은 오늘날 이마데가와도리와 마루타마치도리 사이에 위치한 '니시진쿄고쿠'의 술집 거리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 센본도리는 평온한 생활의 길로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리 풍경이 단순히 과거를 잊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센본마루타마치에서 조금 북동쪽으로 들어간 주택가 안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우치노 아동공원'이 있습니다. 그 구석에 조용히 서 있는 것이, 헤이안쿄에 정전이 있던 '대극전터'의 석비입니다. 한때 수도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이제 동네 어르신들이 산책하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일상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한때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센본닛카츠칸'의 옛 터는 빌딩으로 모습을 바꾸었고, 마키노 쇼조가 1914년에 지은 운치 있는 마치야는 카페로 새롭게 태어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은 장대한 역사를 특별한 유산으로만 남겨두기보다, 거리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의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들게 하고 있는 듯합니다.
국가의 위신을 상징하는 대로에서, 망자를 보내는 길로, 다시 열광의 번화가를 거쳐 오늘날의 평온한 일상으로. 1200년에 걸쳐 모습을 바꾸어 온 센본도리에는 한 길이 걸어온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 곳곳에 잠들어 있는 과거의 기억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마데가와 쇼룸
https://www.shokunin.com/kr/showroom/imadegawa.html
참고자료
https://www2.city.kyoto.lg.jp/somu/rekishi/fm/ishibumi/html/si057.html
https://kyotolove.kyoto/I0000136/
http://yenmado.blogspot.com/p/blog-page.html
https://ja.wikipedia.org/wiki/%E5%8D%83%E6%9C%AC%E9%80%9A
https://ja.wikipedia.org/wiki/%E5%8D%83%E6%9C%AC%E5%BA%A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