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개조]
동경의 파리. 돌바닥 길과 석조 건물이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거리 풍경에, 영화와 사진을 통해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요. 일본의 도시 경관은 다양한 건축물이 혼재해 있지만, 비교적 오래된 일본 가옥의 거리 풍경이 집약적으로 남아 있는 사례로는 가나자와를 비롯해 교토, 구라시키, 다카야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파리의 거리풍경의 매력은 세느강을 따라 이어진 돌바닥과 광활한 아베뉴(대로)가 만들어 내는 통일된 경관 속에 있습니다. 그 기반이 된 것이 19세기 조르주 오스만 남작에 의해 진행된 '파리 개조(오스마니자시옹/travaux haussmanniens)'입니다. 이 도시 개조는 프랑스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메이지기의 도쿄 개조에도 영향을 주어 현대 도시 경관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파리의 건축은 중세 고딕에서 현대 건축까지 다양하지만, 도시를 상징하는 것은 시가지의 약 60%를 차지하는 오스만 양식의 석조 건축군입니다. 8구나 9구, 16구, 17구 등에 많이 남는 이들 건물에서 오스만이 중시한 것은 개별 건축의 호화로움이 아니라 '거리 전체로서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가로의 확폭과 직선화를 통해 건물의 높이와 지붕선, 창문과 발코니의 위치까지 통일함으로써 연속적인 석조 파사드 경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길과 건물을 하나로 설계하고 공원과 광장을 요소에 배치하는 생각은 현재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파리의 매력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 건축 양식은 거주자의 계층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엘리베이터 보급 이전에는, 지상층이 상점, 프랑스식의 1층(일본의 2층에 상당)이 '노블층(귀족층)'으로서 부유층의 주거에 이용되어 거리에 접한 연속 발코니와 높은 천장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위층일수록 천장이 낮고 꼭대기의 다락방은 하인의 거실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저층일수록 지위가 높다고 여겨졌지만 현재는 역사적 풍취와 전망이 좋다는 이유로 어느 층이든 매력적인 주거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망사르 지붕이라고 불리는 접힌 지붕은 건물의 고층화로 인한 일조 차단을 막고 하층에 빛을 확보하기 위한 고안이었습니다. 절제된 외관과 내부의 화려한 장식과의 대비도 특징이며, 가르니에 궁(오페라극장), 루브르 궁, 시청사 등이 대표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오스만 양식은 1853년부터 1870년에 걸쳐 나폴레옹 3세의 '파리에 바람을 통해 통합하고 아름답게 하라'는 지시 아래 세느 현 지사였던 오스만이 주도한 파리 대개조 속에서 확립되었습니다. 중세부터 이어진 당시의 파리는 미로처럼 좁은 골목에 인구가 밀집해, 햇빛과 공기가 닿지 않는 '비위생적인 도시'였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런던 망명 시절에 본 근대적인 도시 환경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밀집 지역을 해체하고 넓은 대로를 통해 도시 환기를 개선하는 것, 오물로 넘쳐났던 도시에 근대적 하수 시스템을 도입해 콜레라 등 역병을 억제하는 것, 런던 하이드파크처럼 시민이 호흡하고 휴식할 수 있는 광활한 녹지를 동서남북으로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당시에는 지역마다 고립되어 있던 도시를 하나의 '기능적인 도시'로 연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도시의 끝에서 끝까지, 혹은 새로 생긴 철도의 주요 역 사이를 직선으로 넓은 도로로 연결하고, 주변 마을을 합병하여 12구였던 파리를 현재의 20구로 확장·정리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파리를 '세계의 수도'에 어울리는 호화로운 거리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념비적인 건축물로서 오페라 극장의 건설을 추진하고, 주요한 기념비를 볼 수 있도록 경관을 설계하였습니다.
오스만은 '가로 확폭과 직선화' '간선도로 정비' '중요 거점을 연결하는 사교로 형성'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세느강을 기반으로 한 도로망에 동심원형 우회도로와 방사형 도로를 결합하고, 에투알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대로를 정비하는 한편, 상·하수도와 공원 정비를 진행하여 도시의 모습을 일신했습니다. 이 장대한 계획을 뒷받침한 것이, 주변 토지를 일체적으로 취득해, 재개발 후의 매각 이익으로 사업비를 회수하는 '초과 수용'이라고 하는 수법이었습니다. 재정적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한편, 기존 주민들이 교외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리는 현상도 만들어냈습니다.
파리의 도시 개조는 비엔나, 바르셀로나, 베를린 등 유럽 각 도시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서도 이와쿠라 사절단의 시찰을 통해 메이지 시대 도쿄 개조에 도입되었습니다. 1870년대 긴자 벽돌가는 방화와 서양화된 근대 도시 경관의 선구자로 정비되었고, 히비야 관청 집중 계획의 방사형 도로 구상, 도쿄 시구 개정 조례에서의 '초과수용' 제도 채용, 나아가 간토 대지진 이후의 복구 계획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 도쿄의 도시 골격을 형성하며, 일본판 '오스마니자시옹'의 발자취를 상징합니다. 배경을 알게 되면 파리의 거리 풍경을 실제로 걸으며 확인해 보고 싶어집니다.
긴자 쇼룸
https://www.shokunin.com/kr/showroom/ginza.html
참고자료
https://ja.wikipedia.org/wiki/パリ改造
https://ja.wikipedia.org/wiki/ジョルジュ・オスマン
https://imp.or.jp/wp-content/uploads/2021/10/special-1.pdf
https://en.wikipedia.org/wiki/Haussmann%27s_renovation_of_Paris
https://www.mlit.go.jp/pri/kikanshi/pdf/pri_review_50.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