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
당점 와카마츠 쇼룸이 있는 기타큐슈시에는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구성 자산인 관영 야하타제철소가 있는데, 간몬 해협을 사이에 둔 이웃, 야마구치현의 하기시도 여러 구성 자산을 가진 곳입니다. 하기라고 하면, 이토 히로부미나 야마가타 아리토모, 타카스기 신사쿠라고 하는 역사 교과서에서는 친숙한 위인을 많이 배출한 장소이며, 근대 일본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땅. 격동의 시대의 중심이 된 그들이 사사한 것이 요시다 쇼인이며, 그 배움의 장소가 된 쇼카손주쿠는 하기시에 있는 쇼인 신사의 경내에 현존해, 구성 자산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요시다 쇼인은 분세이 13년(1830년)에 하기 번사의 집에서 태어납니다. 5세에 야마가유병학 사범인 요시다 가문의 양자가 되어 요시다 가문을 잇는 병학 사범이 되도록 숙부인 타마키 분노신으로부터 열성적인 지도를 받았습니다. 수재가 소문이 나서, 11세 때에는 번주 모리 타카치카에게의 강의를 실시해, 그 재능이 인정됩니다. 21세가 되면 아오모리에서 나가사키까지 5년간 약 13,000km를 걸어서 전국을 유학했습니다. 그 후 가에이 6년(1853년)에 우라가에 온 페리의 함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해외를 직접 보고 싶다고 밀항을 계획했지만 실패. 해외 도항 금지령을 저지른 죄로 투옥됩니다. 하기의 노야마옥에서는 책을 많이 읽고 죄수들에게 '맹자' 강의도 했습니다. 옥을 나온 후에는 타마키 분노신이 시작한 사숙이었던 쇼카손주쿠를 이어받아 학원생의 지도를 맡게 됩니다. 90명 이상의 학원생을 가르친 것은 불과 1년여의 매우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 뜻을 이어받은 많은 학원생들의 활약은 주지하는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안세이의 대옥으로 에도에서 처형당하게 되는데, 그 짧은 생애에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쇼인은 바로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쇼카손주쿠를 보면 강의실은 불과 8첩 정도의 넓이밖에 되지 않아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이 공간에서 배운 사람들이 훗날 일본을 크게 움직이게 되었는가 하면, 장대한 역사의 시작 페이지를 보는 듯한 신기한 기분이 듭니다. 하기에는 쇼카손주쿠 이외에도 많은 사적이 있고,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거리 풍경이 남아 있으니 꼭 방문해 보세요.
올해는 세계유산 등재 10주년이라 특설 사이트도 생기고, 구성 자산이 있는 각지에서는 이벤트도 개최되는 것 같습니다. 신록도 아름답고, 밖을 걷는 것도 기분이 좋은 이 계절. 일본의 제조의 초석을 다진 산업 유산을 둘러보는 여행은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일본 제일의 석탄 적출항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한 와카마츠에도 꼭 와 주세요.
쇼인 신사
https://showin-jinja.or.jp/
세계유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10주년 기념 특설 사이트
https://10anniversary-jmir.com/
와카마츠 쇼룸
https://www.shokunin.com/kr/showroom/wakamatsu.html
참고자료
https://showin-jinja.or.jp/
https://www.hagishi.com/oidemase/greatman/yoshidashoin
https://www.hagishi.com/oidemase/greatman/ishin_chart
https://ja.wikipedia.org/wiki/%E5%90%89%E7%94%B0%E6%9D%BE%E9%99%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