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본샤카도]
이마데가와 쇼룸에서 키타노 텐만구로 가는 도중에 '센본샤카도(千本釈迦堂)'의 통칭으로 사랑받는 절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을 '다이호온지(大報恩寺)'라고 하는 센본샤카도는 진언종 지산파의 명찰. 원래는 천태종의 사찰이었지만, 에도시대 무렵부터는 히가시야마의 치샤쿠인(진언종 지산파)의 관리가 되어 치샤쿠인 주지의 은거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보인 본당은 1227년(안정 1년) 창건 때 그대로이며, 라쿠추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다이호온지가 건립된 13세기 전반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닿지 않는다'거나 '불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조차 없어진다'는 말법의 세상 의식이 강했습니다. 12세기 말부터 겐페이의 내란, 도다이지 대불의 소실, 거듭된 재해, 그리고 무가의 대두에 의한 왕권의 쇠퇴. 이러한 어려움의 연속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흔들리게 하고 도덕은 문란하며 불안으로 가득 찬 시대를 강하게 각인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불교에서는 석가의 가르침을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강해져 석가신앙이 융성합니다. 다이호온지는 석가는 영구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법을 설파한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에 따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1220년(죠큐 2년)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의 손자라고 하는 천태승 기쿠쇼닌에 의해 개창되었습니다. 기쿠는 구사종·천태종·진언종을 널리 알리고 천하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을 천황에게 건의하면, 이것이 인정되어 다이호온지는 천황이 공인하는 고간지가 됩니다. 구제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천태종의 계율을 받고 경전인 법화경의 강의를 듣기 위해 문전에 모였다고 전해집니다.
다이호온지 경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커다란 '오카메상'이 놓여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 동상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1223년(죠우오 2년) 다이호온지의 본당 건립 때 명공 나가이 히다노카미 다카츠구가 동량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신도 기진의 기둥을 짧게 잘라버려 해결책을 찾지 못해 고뇌합니다. 이를 짐작한 아내 오카메는 부처님께 기도한 끝에 모든 기둥을 짧게 다듬고 위에 마수가타를 달아 실수로 잘라버린 몫을 보충하는 방안을 생각해 다카츠구에게 전했습니다. 다카츠구가 이 안을 채택해 시행하자 지붕은 완만하고 뼈대는 묵직하고 안정감이 있는, 예상외로 아름다운 마무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인 자신의 조언이 바탕으로 본당이 완성되었다고 알려지면, 남편의 동량으로서의 면목이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걱정한 오카메는, 남편의 명예를 생각해, 상량식 전날에 자해. 타카츠구는 식을 통해 오카메의 면을 코헤이의 끝에 장식하고 오카메를 애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상량식의 고헤이에 오카메의 탈을 붙이는 유래라고 합니다. 후에 기쿠가 경내에 '오카메 무덤'을 세워 그녀의 덕을 기리자, 이 전설이 퍼져 '오카메 초복신앙'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현재도 다이호온지에서는 절분의 '오카메복절분회'가 열리고, 오카메 인형의 봉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3월 하순이 되면 본당 앞에 있는 일찍 핀 벚꽃이 꽃을 붙인 가지를 우아하게 늘어뜨립니다. 활짝 핀 하얀 꽃을 피우는 이 벚꽃의 이름은 오카메자쿠라. 그 모습은 신앙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센본샤카도의 역사와 동량과 그 아내의 이야기를 조용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센본샤카도는 이마데가와 쇼룸에서 도보로 약 15분. 니시진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센본샤카도를 참배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센본샤카도 다이호온지
https://daihoonji.jp/
이마데가와 쇼룸
https://www.shokunin.com/kr/showroom/imadegawa.html
참고자료
https://ja.kyoto.travel/tourism/single01.php?category_id=7&tourism_id=412
https://kyokoji.jp/daihoonj
https://www.kyoto-hana.net/sakura10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