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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부립 도서관]

미술관이나 극장등이 모인 근대 교토의 일대 문화 존, 오카자키. 메이지 28년(1895)에 정부가 개최한 제4회 국내권업 박람회의 철거지를 활용해 발전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취가 있는 서양 건축으로 왕시를 그리워하게 해 주는 것이 교토 부립 도서관입니다. 평소의 익숙한 경치이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런 건물 안에서 누구나 책을 손에 들고 읽을 수 있다니,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하고 놀랍니다.

부립 도서관의 전신이 되는 '집서원'이 교토부에 의해서 개설된 것은 메이지 6년(1873). 국립에서는 메이지 5년 도쿄에 문부성이 개설한 '서적관'이 있습니다만, 공립으로서는 일본 최초의 공개 도서 열람 시설이었습니다. 집서원이 만들어진 곳은 산조히가시노토인도리라는 곳이기 때문에 산조 쇼룸 바로 옆이었는데 아쉽게도 건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후, 메이지 31년(1898), 쿄토교엔내에 토지를 빌려 쿄토 부립 도서관이 개관. 메이지 42 년에는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교토 부립 교토 도서관으로서 장서 5만권으로 오픈했습니다. 건물의 설계는 다케다고이치(1872-1938). 국회 의사당의 설계로 알려진 일본 근대 건축의 거장이며, 그 밖에도 쿄토 시청, 시마즈 제작소 카와라마치 별관(현·포춘 가든 쿄토)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카자키에서의 개관 당시의 관장은 4대째의 유아사 키치로(1858-1943). 도시샤 대학의 창설자인 니지마 죠(1843-1890)와 동향인 안나카(현·군마현) 출신으로, 니지마가 미국으로부터의 귀국 직후에 고향에 들렀을 때, 그 말에 감화되어 세례를 받은 수십명 중에 유아사가 있었습니다. 후에 도시샤 영학교에 입학해 니지마 밑에서 공부해, 신학과의 첫 졸업생이 됩니다. 유아사는 10대에 형의 사설 도서관 설립을 도운 경험을 가지고, 도시샤 졸업 후 미국에 유학해 도서관학을 연구. 도서관 관장으로서는, 십진 분류법의 도입이나 아동 열람실의 설치, 도서의 관외 대출을 실시하는 등, 현재는 완전히 당연해진 도서관 제도의 정비에 노력했습니다.

또, 개관 당초의 도서관은 미술관으로서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어 타케히사 유메지의 개인전(메이지 45년, 다이쇼 7년)이나 키시다 류세이 개인전(다이쇼 9년)등의 작품전도 개최되고 있습니다. 시작이나 헤이케 비파의 연주에 의한 희대의 문인이기도 했던 유아사는 미술전관에도 적극적으로 임해, 그러한 부립 도서관의 자세는 전국으로부터 큰 주목을 모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윽고 시대는 메이지의 문명 개화로부터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서민의 의식이 자유를 향해 정치적, 문화적으로 활짝 열려 있지만 도서관이라는 존재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나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다는 현재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문화가 시행착오 속에서 선인들에 의해 하나하나 구축되어 온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풍요로움은 몇 배의 가치를 갖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근대 교토를 힘차게 견인한 교토 부립 도서관은 오늘도 역사와 함께 당당히 그곳에 있습니다.

교토 부립 도서관
https://maps.app.goo.gl/Gc7okM9WM1CR8UiB8
산조 쇼룸
https://www.shokunin.com/kr/showroom/sanjo.html

참고자료
https://www.doshisha.ac.jp/attach/page/OFFICIAL-PAGE-JA-395/141311/file/24PeopleBiblio.pdf
https://www.library.pref.kyoto.jp/about/history
https://www.library.pref.kyoto.jp/contents/wp-content/uploads/2019/04/yuasa.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