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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바시·기야]

도쿄에서는 지명 "日本橋"를 "니혼바시"이라고 불리우지만, 오사카에서는 "닛폰바시"이라고 불리웁니다.

도쿄의 "니혼바시"는 황거의 동쪽에 위치하여 있고, 에도 시대의 "고가이도(五街道)"의 기점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고가이도"이란 "도우가이도우(東街道)", "나카센도우(中山道)", "닛코우가이도우(日光街道)", "오우슈우가이도우(奥州街道)", "고우슈우사이도우(甲州街道)"를 가리키고 니혼바시는 현재의 도쿄역과 같은 교통의 요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지역의 물자지이기도 한 "니혼바시"지역은 에도 시대의 제일 큰 도매거리로 발전하게 되였습니다.

전에도 소개해봤었지만 니혼바시에 있는 이세모멘의 에치고야 미츠이 고후쿠야(越後屋三井呉服屋), 즉 미츠코시 백화점의 전신은 전통을 깨고 손에 와닿게 편안하고 특별한 디자인을 가지는 등 상품특성으로 많은 패션 마니아들중에서 사랑을 받게 되였습니다.

당시 에도, 교토, 오사카에서 활액했었던 상인을 이세(伊勢)상인, 오사카상인, 시가(滋賀)상인으로 불리웠었고, 여기 출신의 상인을 메이지 나아가서 일본경제의 창조자로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중 이세상인은 발전은 전국중기에 성행했었던 면화의 도입과 재배과 큰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고급 천으로 사용됬었던 면직물은 이세상인이 원시재부를 누적하게 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토, 오사카 지역에도 이세 고후쿠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외로 1873년에는 제일 국립은행, 1904년에는 최초의 백화점인 미츠고시 백화점이 여기에서 탄생되였고 1923년에 간도우대지진후에는 정부은행가 점차 황거의 서쪽에 있는 미나토구·츄오구등 지금의 금융경제중심지역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추천하게 될 인물은 니혼바시·기야의 창시자인 가토 이스케(加藤伊助)씨. 간세이 4년인 1792년에 "본가 기야"에서 독립한후 부터 날붙이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가부기 "이치가와 단주우로우(市川團十郎)"의 상표로 한 포장을 가진 상품을 판매하는것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외에도 "본가 기야"의 창시자인 "하야시 큐베이(林九兵衛)"이고, 가족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豊臣秀吉)의 어용약상이었고, 에도 초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에도에로 소환으로 오사카에서 "기야"가 독립해 나오게 되었습니다.

기야의 한다이
https://www.shokunin.com/kr/kiya/handai.html
기야의 얏토코 나베
https://www.shokunin.com/kr/kiya/yattoko.html
기야의 족집게
https://www.shokunin.com/kr/kiya/kenuki.html

참고자료
https://ja.wikipedia.org/wiki/%E4%B8%89%E4%BA%95%E8%B2%A1%E9%96%A5
https://ja.wikipedia.org/wiki/%E6%97%A5%E6%9C%AC%E6%A9%8B%E5%B7%9D
https://ja.wikipedia.org/wiki/%E4%BC%8A%E5%8B%A2%E5%95%86%E4%BA%BA
https://ja.wikipedia.org/wiki/%E6%9C%A8%E5%B1%8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