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jiri_in_the_Suruga_province

[화지(和紙)의 역사]

우키요에(浮世絵)나 서적, 권축등 일본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뺴놓을수 없는 한가지가 바로 화지(일본식 종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화지는 어떤 역사를 거쳤을까요.

일본에 제지기술이 전래된것은 5~6세기 무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701년에 “다이호 율령(다이호연간에 제정한 율)”에 의해 “도서료”이라는 부서가 설치되면서 화지의 국내생산이 본격화 되었습니다. 도서료는 고사기나 일본서기의 편찬을 담당하는 부서여서 따라서 종이를 생산하는 일도 맡게 되었습니다. 부속 기관으로서 종이 거름을 전문으로 하는 “가미야인(紙屋院)”의 뒤바라지로 제지를 하였습니다. 또한 불교가 성행된 시기이기도 하였기에 경문을 작성하는데에도 종이가 많이 필요되었습니다.

그 후, 헤이안쿄로 도읍을 옮기자 가미야인의 사업이 확대되어 일본 독자적인 제지법인 “나가시 스키(흘리고 거름”의 기술이 확립되었습니다. 나가시 스키이란 닥나무나 안피나무 등의 원료를 물과 섞어서 “네리”라고 불리우는 식물에서 재취된 점액을 첨가해서 제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죽렴을 친 거름으로 원료액을 퍼올린후 앞뒤로 흔들어 충분한 두께가 될때까지 반복합니다. 그 전까지는 종이는 귀중품이어서 일상적으로 목간을 사용하는것이 주류이었지만, 나가시 스키 기술로 인해 종이의 대량생산이 가능하였고 권축이나 문학, 시가집 등 화지를 사용한 일본문하가 꽃피게 되었습니다.

제지기술이 확립됨에 따라 가미야인 뿐만아니라 각지의 장원에서도 제지생산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미야인은 원재료 부족이란 상황에 빠지게 되어, 사용된 화지를 다시 나가시 스키를 하여서 제지하려고 하였지만 원래 종이에 묻혀진 먹을 제대로 제거할수는 없었고, 다시 제조된 종이는 옅은 먹빛이 보여서 그런 종이를 또한 “가미야지”라고 불리웠습니다.

이전에는 관영 제지 공장으로서 고급 종이 제조를 담당해온 가미야인 이었지만 제지기술이 보급됨에 따라 남북조시대에는 페지되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종이의 소비층은 공가나 승려에서 무사까지 확대되, 화려한 얇은 종이보다는 두껍고 실용적이면 튼튼한 종이의 수요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무사들의 증답용으로 중시되었고 고급품이었던 스기하라지를 수인으로 묶어 보내는것이 일반화되면서 증답품을 종이로 포장해서 드리는 풍습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에도시대에 들어가서 종이는 드디어 서민들사이에서도 보급되어, 화장지로부터 창호까지 여러가지 경우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키요에를 비롯한 출판문화의 발전은 종이에 대한 수요를 늘어났고 각 번지에서의 생산도 강화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닥나무이나 안피나무가 주요 원료로 되었지만 그 후에는 삼지닥나무등 새로운 원료가 생기면서 제지가 보급화되 생산량도 많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메이시대에 들어가 구미에서 펄프를 원료로 한 양지가 수입되면서, 일본 전통의 종이가 “화지”로 인식받게 되었습니다. 메이지 후반부터 다이쇼를 거쳐 신문이나 서적등의 대량 인쇄가 본격화되면서 프린터나 잉크와 더욱 잘 맞는 서양지가 사회에 침투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화지는 1000년이상 이라고도 하는 뛰어난 내구성과, 긴 섬유가 얽힌 부드러운 질감을 살린 유일무이한 존재로 되었습니다. 문화재의 복구나 지폐의 소재, 근년에는 잡화나 인테리어까지 화지가 많이 사용되어 현대생활에 점점 융합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SIWA·시와
https://www.shokunin.com/kr/siwa/

참고자료
https://ja.wikipedia.org/wiki/和紙
https://ja.wikipedia.org/wiki/紙屋院
http://uru-washi.com/feature/1297
https://bunka.nii.ac.jp/db/heritages/detail/288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