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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학으로부터 우주까지]

한 장의 종이를 종이접기처럼 접어서 만들어진 코보시오리의 오리가미스툴, 종이와 색성의 질감이 풍부하고 가벼우면서 가공하기 쉽고 목재로는 만들기 힘든 형태나 곡선으로 표현될수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곡면으로 가공되어있어서 사람을 지탱할수 있는 정도의 강도가 있고, 500kg의 무게에도 견딜수 있습니다. 심재는 재생지를 사용하고 접착제에는 전분풀을 사용하는 등과 같은 노력에는 재생지를 사용하는것으로 환경문제를 감소하자는 제작자의 의도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거 종이를 접는 행위는 언제부터 종이접기 문화로 발전되었을까요.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 이후 공가나 무가 등 상류층 사이에서는 편지나 선물을 포장하는 문화가 생기게 되었고, 무로마치 시대에는 예법(礼法)이 무로마치 막부가 정비되는것과 함께 무가에서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그중, 와시(일본식 종이)를 정성스럽게 접어서 건네준다고 하는 의례을 표현하는 종이접기가 “종이접지 예법”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종이접기가 서민들사이에서의 오락으로 된것은 에도시대에 들어선후 입니다. 1797년에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 된 종이접기 책인 <밀전 천마리 종이학(秘伝千羽鶴折形)>가 교토의 요시노야 타메야쓰에 의해 발행되어 한장의 종이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진 몇 마리 이상의 종이학을 접는 방법이 삽화로 49종가 소개되었습니다. 고도의 기술과 독자성을 가진 연학은 “쿠와나의 천마리 학”으로 미에켄 쿠와나시의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몇가지의 문헌을 통해 당시에는 약 70종류의 종이접이가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이후에는 유아 교육의 신조라고 하는 독일의 교육학자 플레이벨에 의한 교육법의 도입과 함께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종이접기가 일본에 전해오게 되었습니다. 지육의 완구로 된 서양의 종이접기과 일본의 전통 종이가 융합해서 현재의 종이접기의 레퍼토리가 확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20년경에는 종이접기 예법을 표시하는 “오리가타”과 유희의 종이접기를 표시하는 “오리가미”의 명칭이 확립된후부터 일본어에서 종이접기를 표시하는 “折紙” 라는 단어가 사용하기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의 예술작품에서도 종이접기가 높이 평가되어 전세계적으로도 새로운 기법의 종이접기가 많이 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종이접기의 기하학적인 성질이 수확에서는 물론 건축, 로봇, 의료, 우주개발 등 여려가지 영역에 응용되어 선단기술의 하나로 많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코보시오리의 오리가미스툴
https://www.shokunin.com/kr/siwori/stool.html

참고자료
https://www.origami-noa.jp/%E3%81%8A%E3%82%8A%E3%81%8C%E3%81%BF%E3%81%AB%E3%81%A4%E3%81%84%E3%81%A6/%E3%81%8A%E3%82%8A%E3%81%8C%E3%81%BF%E3%81%AE%E6%AD%B4%E5%8F%B2/
https://guides.lib.kyushu-u.ac.jp/origami/history
https://ja.wikipedia.org/wiki/%E6%8A%98%E3%82%8A%E7%B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