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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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한 교토의 도시건설]

교토는 바둑판과 같이 한칸 한칸으로 된 도시구조에, 지금에도 헤이안쿄(平安京)의 여운이 남겨진 도시이지만 사실 오닌의 난(応仁の乱)으로 도시 대부분가 소실된 과거도 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러한 교토를 재건하였고, 지금의 교토에는 히데요시 시기의 건축이 많이 남겨져 있다고 합니다.

히데요시로 의한 교토의 변화는 주로 4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① 쥬라쿠다이(聚楽第)(히데요시가 교토에 지은 대저택)의 건설, ②오도이(성 둘레의 흙담), ③테라마치(寺町)·테라노우치(寺之内)의 형성, ④텐쇼의 토지분할을 열거할수 있습니다. 

① 쥬라쿠다이(聚楽第)의 건설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모반으로 세력을 잃자, 실권이 히데요시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히데요시는 우선 헤이안쿄의 오다이리(大内裏)를 이용해서 자신의 저택이자 정치 근거지로도 되는 “쥬라쿠다이(聚楽第)”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현란하고 호화로우며 주위에 넓은 해자를 둘러친 성곽 주위에는 무가의 저택과 공가의 저택 등이 늘어 있는 성곽도시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히데요시가 관백직을 조카 히데츠구에게 물러주면서 히데츠구도 쥬라쿠다이에 이주하게 되었지만, 히데츠구가 히데요시에 의해 타카노산으로 추방되면서, 쥬라쿠다이는 모반인이 살았다는 이유로 철저히 무너뜨려버리게 되었습니다. 준공한후부터 철거까지 불과 8년밖에 안되어, 지금도 그의 전모습이 수수께기에 쌓여 있습니다.

② 오도이(성 둘레의 흙담)의 건설
히데요시가 실시한 도시 개조 정책중 규모가 제일 큰것은 “오도이(御土居)이라는 토루의 건설입니다. 적의 공격을 대비하는 방루와 가모가와의 범람으로부터 시가를 보호하는 제방역할을 하여, 북쪽은 다카가미네(鷹峯), 남쪽은 구조(九条), 동쪽은 가모가와(鴨川), 서쪽은 가미야 가와(紙屋川) 부근 을 따라 쌓였습니다. 황폐해져 상경과 하경 두 부분으로 분단되어 있던 당시의 교토를 하나로 한것이 바로 이 오도이 입니다. 공사에는 수만명이 동원되어 4개월 정도의 단기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도이의 안쪽을 낙중, 바깥쪽을 낙외라고 부르고 출입구가 7개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안바구치, 단파구치이란 지명은 바로 그때로부터 남겨진것이라고 합니다.

③ 테라마치(寺町)·테라노우치(寺之内)의 형성
오도이의 건설을 전후로 하여 오도이의 동쪽을 “테라마치”, 북쪽을 “테라노 우치”를 형성하여 낙중에 흩어져 있던 사찰들을 이전시켰습니다. 그 목적은 교토의 방위 및 세수의 징수를 효율화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의 데라마치 도리에는 북쪽은 안바도리에서 남쪽은 고조도리까지의 사이에 사찰이 모두 80개이상 있다고 합니다. 혼노지와 쇼간지가 현재의 위치로 이동된것도 이 시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④ 텐쇼의 토지분할
헤이안쿄 도리는 약 120m의 간격으로 만들어져 있고, 정사각형으로 구확되어 있었지만 히데요시는 그 정사각형 중간에 도로를 개척하여 새롭게 도시구분 하였습니다. 헤이안 시대 이 구역에는 귀족들의 저택으로 늘여져 있었으나, 상업이 발달되면서 상인의 가게나 집이 늘어나면서 정면이 거리로 향한 건물도 많아졌습니다. 한편으로 거리와 연결되지 않아있는 정사각형의 중신부분은 공토가 되어 버려 이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텐쇼의 토지분할후 정사각형의 공터를 다시 직사각형으로 구획되어 거리가 다시 축소되었습니다. 미유키초도리, 도미코지도리, 사카이초도리를 비롯한 12개에 정도 되는 도리는 그때 건설된것이로 지금의 교토에 있어어도 중요한 거리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산조대교이나 고조 대교, 어소의 개수와 정비 등, 다양한 곳에서 그때의 변혁을 엿보일수 있습니다. 히데요시는 헤이안교의 모습을 남기면서도 중세로부터 근세로 시대가 변화하는데 어울려 군사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교토를 새롭게 변혁시켰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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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s://www.city.kyoto.lg.jp/kamigyo/page/0000012443.html
https://www.kyoto-arc.or.jp/
https://www.city.kyoto.lg.jp/bunshi/page/0000005643.html
https://www.okeihan.net/navi/kyoto_tsu/tsu201611.php
https://www.kyoto-teramachi.or.jp/history/
https://ja.wikipedia.org/wiki/聚楽第
https://ja.wikipedia.org/wiki/御土居
https://ja.wikipedia.org/wiki/天正の地割
https://ja.wikipedia.org/wiki/寺町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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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용의 수세미]

다카다코조쇼텐의 프라이팬용의 수세미, 다들 알고있어 하시는 수세미와는 조금 다를것입니다.

수세미의 재질인 종려에서 제일 희귀한 “귀모(鬼毛)” 라고 하는 특히 딱딱한 부위가 있습니다. 오니게이라면 약간 힘을 주어도 냄비가 깨끗이 씻어집니다. 

딱딱한 귀모에 쥐기 쉬운 너도밤나무 손잡이가 달려있어, 절묘한 각도 덕분에 맨손으로 수세미를 잡는것보다 힘을 들이기 쉬워 철제 프라이팬은 물론 가공된 프라이팬에도 사용할수 있습니다. 또한 뚝배기나 그릴 냄비에 달라붙어 있는 물질도 깨끗이 제거할수 있습니다.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있거나 네일을 상하고 싶지 않을때, 또는 손이 거칠때 측히 그의 편리함이 느껴집니다. 저희 가게 스탭은 프라이팬, 야키오니기리 철판등 여러가지 조리기구에 이 수세미를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매달아서 수납할수 있어 물빠짐이 좋고 위생적입니다.

전용 도구이라도 다른 무언가로 대체할수 있겠지만, 전용이라면 전용만의 이유가 있는거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밀한 차이에서 대체할수 없는 편리함을 가져다주는것이 아닐가 싶습니다.

다카다코조쇼텐의 종려재질의 부드러운 수세미
https://www.shokunin.com/kr/kozo/tawashi.html
FD STYLE의 프라이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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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사와라 리쿠쵸의 프라이팬
https://www.shokunin.com/kr/rikucho/fryingpan.html 
산조 쇼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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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야키를 먹고 싶어서 오가사와라 리쿠쵸의 프라이팬으로 돈다마(돼지고기와 계란)의 오코노미야키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잘게 썬 양배추를 듬뿍 넣어, 어느정도 직경과 깊이가 있기 때문에 1인분이라면 배불리, 2인분 먹기에는 딱 좋은 사이즈인 오코노미야키가 만들어 집니다. 둥글게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져서 계속계속 오코노미야키 만들기에 활용할거 같습니다.

교토부 쇼쿠닌닷컴 여성스탭
https://www.shokunin.com/kr/rikucho/fryingpa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