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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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가레산스이(枯山水)정원]

비 오고 눈 오는 날, 마루 아래 고즈넉히 앉아, 경치를 들여다 보며 마음도 들여다 본다.

가레산스이(枯山水)정원으로 국내외에서 유명한 쇼덴지는 멀리 보이는 히에이산(比叡山)의 영봉을 도입한 차경(借景) 정원으로서 교토시가 지정한 명승지로 되어 있습니다. 사츠키의 손질에 의해 마치 물결이 흐르는듯한 흰 모래로 시치고산조를 표현한 정원은 사자의 새끼가 걷는 정원(獅子の児渡し庭園)라고도 불린다. “허”와 “실”, 눈앞의 “실체”인 돌과 모래, 머릿속의 “허체”인 창해상전, 얼핏 보기에 눈앞에 있는 정원은 일시적인 풍경으로 보이지만 그야말로 중생만물의 생가귀향인 깊은 우의가 담겨있다.

쇼덴지
https://goo.gl/maps/jAZaDbpJVUbw2XM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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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경 낙양, 우경 장안, 헤이안성 교토의 구조]

교토(京都)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경(京)은 수도라는 뜻으로, 일국의 최고 행정기관이 자리를 잡는 곳, 천자가 사는 곳을 뜻한다. 경은 경사(京师)라고도 불리다가 서진(西晋) 세종사마사의 이름과 곂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교토(京都)로 바뀌었다.

794년 간무 천황은 나라(奈良)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헤이안쿄(平安京)라 하였고 일본의 역사에서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었다. 교토(京都)라고 정식으로 불리기 시작 된 것은 헤이안 후기부터다.

교토는 도시계획 당시 당사 파견 활동의 절정기를 맞이하여, 당나라의 수도 장안의 바둑판 구도를 모조하여 완성되었다. 교토의 지세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남쪽을 향한 분지이다. 북단은 지금의 이마데가와도오리(교토고쇼의 북문)의 일통, 남단은 지금의 교토역 구조통 부근이다.

스자쿠오거리를 중축으로, 동쪽을 좌경, 서쪽을 우경으로 하였다. 동시에 서경 장안, 동도 낙양의 방위를 따라 우경은 장안, 좌경은 낙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교토에 가는 것을 '상낙(上洛)'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서쪽 지역이 습지여서 살기가 마땅치 않아 점차 쇠퇴해 동쪽 좌경구, 즉 카모가와, 긴카쿠지 까지 확장되었다.

이후 남북조 시대의 응인의 난으로 교토는 소실되었다. 그래서 현재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은 가마쿠라 시기 1227년의 다이호온지의 천본석가당이다.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영도하는 "천정지할"의 부흥아래, 편하게 관리하기 위해 절과 신사등을 모두 테라마치도오리로 집중적으로 이전하였다. 현재 교토의 산죠나 시죠 구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고 길며 입구가 좁은 집이나 가게 등은 당시 인구가 급증하고 땅이 부족한 점을 감안해 원래의 정방형 택지를 남북으로 된 장방형으로 분할한 형태이다. 주거 면적을 늘리는 동시에 점포 상업의 발전을 도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