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노 아시헤이와 카하쿠도우]
와카마츠를 대표하는 위인 소설가 히노 아시헤이(본명: 타마이 카츠노리). 메이지 40년(1907년)에 현재의 키타큐슈시 와카마츠구에서 석탄중사업을 영위하는 아버지·타마이 킨고로, 어머니·만의 장남으로서 탄생, 일찍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습니다.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 사이에는 종군하여 전장의 모습을 수많은 종군수첩에 기록했습니다. 쇼와13년(1938년), 31세 때에는 출정전에 발표한 '분뇨담'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전장에서 시상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육군 보도부원으로 종군기 '보리와 병정'을 비롯한 '병정 3부작'으로 일약 국민적 작가가 되었습니다. 전쟁 후에는 전쟁 협력자로 공직에서 추방되었지만, 그 후에도 집필에 힘써 여러 차례 영상화된 대표작 '꽃과 용'을 집필했습니다. 만년에는 스스로의 전쟁 책임과 마주한 '혁명 전후'를 발표. 와카마츠의 여름 풍물시인 "고헤이타바야시"의 노래 가사도 히노 아시헤이에 의한 것으로, 지금도 와카마츠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인물입니다.
그런 아시헤이가 쇼와 15년(1940년)부터, 스스로 그 생애를 마감한 쇼와 35년(1960년) 사이의 대부분을 보낸 옛 거처 "카하쿠도우(河伯洞)"가 와카마츠에 있습니다. 아시헤이의 캇파(하동: 일본의 요괴)를 좋아하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캇파가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일본식 안채와 2층에 아시헤이의 서재가 있던 서양식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본식 부분은 아시헤이의 아버지 킨고로가 구상하여 당시 베스트셀러가 된 '보리와 병정' 등의 인세를 사용하여 신축했는데, 아시헤이는 전쟁터에서 고생하는 전우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를 반대하고, 두고두고 이를 부담스러워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키타큐슈시 지정문화재로 공개되어 있어 자유롭게 견학할 수 있습니다.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어 집의 구조나 아시헤이에 대해 정중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카하쿠도우는 1000엔만 있으면 일본식 가옥이 지어지는 시대에 무려 그 10배인 1만엔이 넘는 비용을 들여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 어려운 야쿠수기와 큰 오동나무 한 장판, 검은 감 등이 듬뿍 사용되어 그 묵직한 구조에 압도됩니다. 난간과 유리판, 화장실과 욕실 천장 등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고집과 장인의 기술이 느껴져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어졌습니다.
2층에 있는 아시헤이의 서재에는 "발은 땅에 마음에는 노래와 날개를 펜에는 색깔과 살을"이라고 적힌 색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스스로 그 생애를 마감한 그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집필에 몰두했는지 그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조용하고 평온한 공간이었습니다.
카하쿠도우는 히노 아시헤이의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건축 견학으로 분명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귀중한 건물인 카하쿠도우. 와카마츠 쇼룸에 오시면 꼭 방문해 보세요.
카하쿠도우(무료주차장 있음)
https://maps.app.goo.gl/MnCVb4HtjAZ2jhDa7
와카마츠 쇼룸
https://www.shokunin.com/kr/showroom/wakamatsu.html
참고자료
https://ja.wikipedia.org/wiki/%E7%81%AB%E9%87%8E%E8%91%A6%E5%B9%B3
https://www.city.kitakyushu.lg.jp/contents/02100263.html
https://www.nhk.or.jp/etv21c/file/2013/12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