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정원]
문화인이기도 했던, 메이지·다이쇼 시대의 정치가·야마가타 아리토모. 그가 남긴 도쿄의 '친잔소', 교토의 '무린안', 오다와라의 '코키안'의 3개 정원은 모두 '야마가타 삼명원'이라고 불립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메이지 정부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내무경·추밀원 의장·총리대신등을 역임한 야마구치현 하기 출신의 군인·정치가입니다. 일본 군벌의 시조라고 하여 정치가로서도 수완을 발휘했습니다만, 와카를 즐겨, 특히 정원 조성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이 있었습니다. 야마가타 삼명원은 근대 일본 정원의 걸작으로 평가되었고, 메지로다이의 친잔소는 도쿄의 사저, 무린안은 별저로 지어졌으며, 코키안에서는 만년을 보냈습니다. 후의 연구에 의하면 야마가타의 정원은 출신지인 하기의 지형을 재현한 것으로, 고향을 그리워했던 것 아닐까, 라고도 전해집니다.
친잔소는 야마가타가 1878년(메이지 11년)에 '츠바키야마'라고 불리던 땅을 도쿄의 도쿄의 본저택으로 구입하여, 그 이름을 따서 붙여졌습니다. 언덕 위에 직접 지휘하여 정원을 조성하여 도쿄돔의 약 1.5배나 되는 약 2만평의 기복이 심한 지형을 잘 살려 임천회유식 정원을 조성하였습니다. 당시 메이지 천황을 비롯한 당시 정재계 중진들을 초청하여 친잔소에서 국정을 움직이는 중요한 회의를 열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는 결혼식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저도 얼마 전 친구의 결혼식으로 방문하여 그 도쿄 한복판이라고는 믿기 힘든 규모와 장대한 전망을 가진 정원에 압도되었습니다.
무린안은 1891년(메이지 24년)에 오가와 지헤에에게 지시하여 쌓은 교토 시가를 서쪽으로 바라보는 정원입니다. 지금까지의 연못을 바다로, 바위를 섬으로 바라보는 상징주의적인 정원에서 히가시야마를 차경으로 삼고, 비와코 수로의 물을 도입하며, 시골 산과 시내를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흐름을 가진 자연주의적인 새로운 정원관으로 조영되어, 1951년(쇼와 26년)에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등과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러일전쟁을 결단한 '무린안회의'에 사용된 방도 양옥 2층에 남아 있습니다. 연중 공개되고 있으며, 차경을 바라보며 말차로 한 잔을 즐길 수도 있어, 오카자키 산책에 추천합니다.
코키안은 1907년(메이지 40년)에 70세(고희)를 맞이한 야마가타가 오다와라의 이타바시에 지은 별저입니다. 도쿄의 정원사 이와모토 카츠고로에게 지시하여 쌓은 정원은 사가미만과 하코네산을 차경으로 하고, 하코네로부터의 자연수를 도입해, 카자마츠리에 수원지를 마련해 거기에서 그은 물로 폭포를 만드는 등의 궁리를 하고 있어, 야마가타의 정원관을 살린 명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코키안은 현재, 아이오이 닛세이 동화 손해 보험 주식회사의 오다와라 연수소로, 매주 일요일에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국군의 아버지'라고 불린 한편, 뛰어난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 그 시절에 유례없는 미적 감각을 키워,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정원을 만들어낸 것에 감동과 감사를 느낍니다. 오다와라의 코키안만 방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 직접 발걸음을 옮겨, 가능하다면 야마가타 삼명원을 모두 방문하고 싶습니다.
무린안
https://maps.app.goo.gl/gFeG3Es5M2LxNP3d6
호텔 친잔소 도쿄
https://maps.app.goo.gl/oS4AQMGg6JeX8qWp9
코키안(야마가타 아리토모 공작 별저 터)
https://maps.app.goo.gl/HCPNLsVZfUc91yoT8
야마가타 아리토모 기념관 *코키안 내에 세워진 이토 추타 설계의 양관을 이전
https://maps.app.goo.gl/zaFGRMKTp46XiMT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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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s://murin-an.jp/about/
https://hotel-chinzanso-tokyo.jp/garden/history/
https://www.general-yamagata-foundation.or.jp/garden.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