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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라시키 민예관]

오카야마의 쿠라시키 미관 지구에 있는 '쿠라시키 민예관'은, 도쿄·코마바의 '일본 민예관'에 이어, 일본에서 2번째로 생긴 민예관입니다.

쿠라시키 민예관은, 에도 시대 후기에 세워진 쌀 창고를 활용해, 일본 민예관이 1936년(쇼와 11년)에 개관한 약 12년 후, 1948년(쇼와 23년)에 개관했습니다. 왜, 쿠라시키가 두 번째였는가. 그 큰 요인에, 오하라 미술관의 창립자로서도 알려진 쿠라시키 출신의 실업가·오하라 마고사부로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는 민예 운동의 좋은 이해자이자 지원자로, 일본 민예관 설립에 있어서는, 건설비를 기증했습니다. 그 뜻은 아들인 소이치로에게 계승되어 그의 초대를 받아 쿠라시키로 거처를 옮겨 쿠라시키 민예관 초대 관장이 된 것이 토노무라 키치노스케입니다.

시즈오카현에서 목사를 하고 있던 토노무라는 직물의 연구자이기도 해, 쿠라시키 미관 지구의 보호에도 공헌했습니다. 미관지구가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거리의 풍경을 보존한다는 의식이 현재처럼 일반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시기에, 이 지구에서 옛 건물을 재생해, 공개한 최초의 사례가, 이 쿠라시키 민예관입니다. 현재의 쿠라시키 미관 지구의 경치가 있는 것은 토노무라 키치노스케, 그리고 쿠라시키 민예관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쿠라시키 민예관의 외벽은 흰 벽에 붙은 기와, 지붕은 둥근 기와와 납작 기와를 번갈아 쌓은 것으로, 이 지방의 전형적인 토장 만들기입니다. 소나무 목재로 골격을 짜고, 두께 20cm의 흙벽을 달았습니다. 화재·비바람·도난·습기 등으로부터 화물을 보호하는 용도로 태어났으며, 건물 자체가 민예품인 이 건물. 저는 전국의 민예관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외벽의 감촉이 떫고 아름다운 이런 기와는 지금까지 다른 민예관에서 본 기억이 없습니다. 민예관의 오래된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쿠라시키의 오래된 거리 풍경도 운치 있고, 그 고장의 풍토나 문화에 따라 다른 민예관의 건축 자체에 주목하는 것 역시 민예관에 가는 큰 즐거움 중 하나라고 실감했습니다.

쿠라시키 민예관에서는 도자기·유리·석공품·염직품·목공품·칠기·금공품·편조품·지공품, 민화 등 약 1만 5천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은 초대 관장인 토노무라 키치노스케가 국내외에서 모은 민예품입니다. 바구니만으로 하나의 상설 전시실이 있을 정도로 세계의 바구니가 충실한 것도 특징이며, 쿠라시키 유리도 보고 싶은 곳입니다. 민예나 공예등의 전통 산업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쿠라시키는, 당점에서 취급하고 있는 '스나미 토루 쇼텐'의 등심초로 만든 바구니 '이카고'가 탄생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꼭 한번 방문해 보세요.

쿠라시키 민예관
https://kurashiki-mingeikan.com/
스나미 토루 쇼텐
https://www.shokunin.com/kr/su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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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홋카이도의 이미지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삿포로시의 히츠지가오카 전망대에 있는 '클락 박사상'이지요. 홋카이도 여행에서, 광대한 토지를 배경으로 그 포즈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Boys, be ambitious. (청년이여, 큰 뜻을 품어라)'의 말은 유명하지만, 이 말은 그가 일본을 떠날 때에 한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 그 클라크 박사는 홋카이도에서 어떤 공적을 남겨 동상으로 남겨지게 된 것일까요?

클라크 박사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 그는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라는 이름의 미국인 교육자입니다. 에도 시대의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식산흥업' '부국강병'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여러 나라의 기술이나 학문등을 도입할 목적으로 정부에 고용된 '고용 외국인'으로서 방일했습니다. 클라크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나 1848년 같은 주에 있는 애머스트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출신 학교인 윌리스턴 신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화학과 식물학을 배우기 위해, 독일에 유학해 괴팅겐 대학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 귀국 후에는 아머스트 대학의 교수로서 화학, 동물학, 식물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오는 계기가 되는 만남이 있습니다. 바로 도시샤 대학의 창립자인 니지마 조 입니다. 니지마 조는 1864년 밀출국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기독교 세례를 받은 후 고등학교, 대학, 신학교와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고 1874년 귀국할 때까지 미국에서 지냈습니다. 그 니지마 조가 배운 대학이 아머스트 대학이었고, 클라크에게서는 화학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니지마는 이와쿠라 사절단의 통역으로서 구미 제국으로 수행했습니다. 사절단의 활동을 마친 후에는 기독교 선교사로서 일본 전도 통신원이 되어 일본으로 귀국. 그 무렵 일본에서는 메이지 정부가 근대 국가로의 걸음을 진행시키는 가운데, 남하하는 러시아에의 방비와 산업의 육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어, 홋카이도의 개척은 중대한 국가 프로젝트가 되고 있었습니다. 원시림이 펼쳐진 홋카이도의 개척에는 우선 농지를 정비하고 농업을 산업으로 발전시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홋카이도의 혹독한 기후나 광대한 토지를 개척할 필요성 때문에, 대규모 개척의 경험이 있는 미국으로부터 기술자를 초래하게 되어, 거기서 일본에 귀국하고 있던 니지마 조가, 아머스트 대학에서 가르침을 받은 클라크 박사를 정부에 소개한 것입니다.

그 무렵 클라크는, 매사추세츠 농과 대학의 학장에 취임하고 있었습니다만, 일본 정부로부터 강한 요청을 받아 대학의 휴가를 이용해 일본을 방문해 삿포로 농학교 초대 교감으로 부임했습니다. 클라크는, 매사추세츠 농과 대학의 커리큘럼을 삿포로 농학교에서도 도입해 학생이 농업을 실제로 체험하기 위한 농장을 만들어, 농학 뿐만이 아니라 동물학·식물학·이학·공학 등 폭넓은 분야의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른 도덕교육 등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합니다. 농업기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홋카이도 개척의 일환이기도 한 남하하는 러시아에 대한 방비에 대해서도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에 유사시 삿포로농학교 학생이 둔전병의 지휘관이 되는 것을 상정한 병식훈련도 도입. 그 훈련을 실시하는 장소로서 또 입학식·졸업식이나 강연회등을 실시하는 장소로서 '연무장'의 건설을 제언했습니다. 이 제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무장이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고 있는 '삿포로 시계탑'입니다. 클라크가 홋카이도에서 보낸 것은 9개월로 짧은 기간이며, 연무장 완성 시에는 이미 귀국했습니다만, 클라크의 제자인 1기생의 졸업식은 이 연무장에서 열렸습니다. 클라크가 초대 교감으로서 쌓아 올린 삿포로 농학교의 커리큘럼은, 클라크가 이임한 후에도 매사추세츠 농과 대학 출신자가 교감으로서 부임해 계승되어 삿포로 농학교에서 배운 졸업생들은, 홋카이도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근대화를 지지하는 인재로서 활약해 갔습니다.

홋카이도 개척의 초석을 쌓은 한 사람으로서, 그 공적을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다이쇼 15년(홋카이도 제국대학 시대)에 대학 구내에 '윌리엄. S. 클락 흉상'이 건립되었습니다. 초대 클라크상은 태평양 전쟁의 금속류 회수령에 의해 공출되었습니다만, 그 후 다시 주조된 2대째 클라크 흉상이 현재도 홋카이도 대학 구내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는 클라크 박사상이라고 하면 오른손을 든 전신 동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홋카이도 대학 구내의 클라크상이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어, 대학 구내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증가한 것으로, 대학측이 학술 연구등의 방해가 되어 관광 버스의 출입을 제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삿포로의 상징으로 정착하고 있던 클라크 박사를 보러 올 수 있도록 삿포로 히츠지가오카 전망대에 새로운 클라크 박사상을 건립하기로 하고 쇼와 51년에 그 유명한 포즈의 클라크 박사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삿포로 시민으로서는, 친숙하지만 의외로 실제로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하는 분도 많을 지도 모르는 클라크 박사상이나 삿포로 시계탑입니다만, 지금의 삿포로시나 홋카이도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클라크 박사와 그 연고가 있는 삿포로 시계탑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지도 모릅니다.

오타루 쇼룸
https://www.shokunin.com/kr/showroom/otaru.html

참고자료
https://ja.wikipedia.org/wiki/ウィリアム・スミス・クラーク
https://www.hitsujigaoka.jp/clark/
https://ja.wikipedia.org/wiki/新島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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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오노마토페]

'구츠구츠(보글보글)' 끓이는 소리까지 일품인 나베야키우동. '샤키샤키(아삭아삭)' 맛있는 무 샐러드. '쿠타쿠타(푹 익은)'가 될 때까지 푹 끓인 야채. '츠룬(매끈매끈)'과 '토로토로(걸쭉하다)' 녹는 자완무시. 부엌이나 식탁에서는 매일 여러 가지 소리와 그것을 나타내는 말이 넘쳐, 의식하고 귀로 주워 보면, 새삼 일본어에 있어서의 표현의 재미와 풍부함을 느낍니다.

듣기로는 일본어는 이러한 소리나 감각, 상태를 표현하는 의음어나 의태어인 '오노마토페'가 풍부한 세계적으로도 드문 언어라고 합니다. 특히 식재료의 식감을 표현하는 오노마토페는 여러 나라에 비해 많아 식감의 미묘한 차이를 오노마토페로 엄밀히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츠루츠루'는 매끈하고 미끄러운 상태, '피리피리'하면 매운맛, '구츠구츠'하면 센 불을, '코토코토'나 '쿠츠쿠츠'하면 약한 불을 직감적으로 이미지할 수 있습니다. 소리와 움직임이 연결되면 감각과 기억이 자극되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이 한층 강해집니다. 요리에 있어서 오노마토페는 조리의 모습이나 식재료의 상태를 말만으로 구체적으로 이미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노마토페를 의식하면서 요리를 해보니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오노마토페로 표현하는 일본어의 재미를 재인식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구츠구츠(보글보글)' '주주(지글지글)’의 소리에 귀를 기쁘게 해, '호쿠호쿠(따끈따끈)'나 '토로토로(걸쭉하다)'의 식감을 맛봅니다. 평소의 부엌이나 조리기구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익숙한 식재료의 식감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오노마토페를 통해 오감으로 요리를 느껴보면 먹는 시간도 더 풍부하고 즐거운 것이 되지 않을까요?

마츠야마 도우고우죠의 토회 도나베 S
https://www.shokunin.com/kr/matsuyama/donabe.html
시로기야 싯기텐의 데시오 사라(작은 접시)
https://www.shokunin.com/kr/shirokiya/teshio.html
세류가마의 소바잔
https://www.shokunin.com/kr/seiryu/soba.html
오테라 고하치로 쇼텐의 가나마리 M
https://www.shokunin.com/kr/otera/kanamari.html

참고자료
https://toptrading.co.jp/pages/42/detail%3D1/b_id%3D852/r_id%3D45/
https://design.houtyou.com/cooking-design/dish-name/
https://www.pop-school.com/blog2/staff-blog/5753/
https://news.cookpad.com/articles/8144